유리 너머의 고백 · 파리 텍사스 · 빔 벤더스 · 1984

트래비스가 부스 안에 앉아요. 유리 너머로 제인이 보여요. 그런데 제인은 이쪽을 볼 수 없어요. 그가 불을 켜지 않았거든요. 트래비스가 전화기를 들고 말을 시작해요.

트래비스는 4년 만에 아내 제인을 찾아 이 도시까지 왔지만, 막상 마주하자 자신이 누구인지 밝히지 못해요. 대신 한 남자와 한 여자의 이야기를 삼인칭으로 시작해요. 사랑에 빠졌다가, 서로를 아프게 했다가, 결국 여자가 떠난 이야기예요. 낯선 손님의 고백인 줄로만 아는 제인은 '저는 듣는 거 괜찮아요'라고 답해요. 하지만 그 이야기는 다른 누구도 아닌, 트래비스 자신의 이야기예요.

이 장면에서 인상적인 건 유리의 방향이에요. 트래비스는 제인을 볼 수 있지만, 제인은 불이 꺼진 트래비스 쪽을 볼 수 없어요. 보이지 않아야 비로소 할 수 있는 말이 있다는 걸, 이 장면은 조용히 보여줘요. 자신을 3인칭으로 부르는 것도 같은 이유예요. 고백이면서 동시에 고백이 아닌 것처럼 말할 수 있는 틈을 만들어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