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도 몰라줬던 계절 · 벌새 · 김보라 · 2019

은희가 한문 학원에서 영지 선생님을 처음 만나요. 아무것도 아닌 대화인데 선생님이 처음으로 자신의 이야기를 들어주는 것 같아요. 무언가를 오래 기다렸던 사람이 처음으로 앉을 자리를 찾은 표정이에요.

김보라 감독의 「벌새」는 1994년 서울, 열네 살 은희의 이야기예요. 가족 안에서 보이지 않는 존재, 학교에서도 주변부에 있던 은희가 한문 학원의 영지 선생님을 만나요. 선생님은 특별한 말을 하지 않아요. 그저 은희의 이야기를 들어줘요. 그것으로 충분해요. 영화는 성장이란 누군가로부터 보이게 되는 경험임을 말해요.

이 영화의 카메라는 항상 은희의 눈높이에 있어요. 아이의 시선에서 세상을 보기 때문에 어른들의 세계가 더 크고 불분명하게 보여요. 은희가 이해하지 못하는 것들이 화면 밖에 머물러요. 모든 것을 설명하지 않는 그 여백이 영화의 깊이를 만들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