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가가 담담하게 말해요. 예전엔 모델 일을 했었다고, 돈도 꽤 벌었다고. 그런데 어느 날 갑자기 이건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대요. 미래도 안 보이고, 무엇보다 진짜 같다는 느낌이 전혀 없었대요.
홍상수 감독의 이 영화 속 한 장면이에요. 화가는 안정적이었지만 아무 의미도 느낄 수 없었던 일과, 불안정해도 살아있다는 느낌을 주는 그림 사이에서 후자를 택한 이야기를 들려줘요. 듣던 남자도 하얀 종이와 필기도구만 봐도 이유 없이 가슴이 뛴다고 답해요. 두 사람이 처음으로 같은 감각을 나누는 순간이에요.
이 대화에서 "알 거 같아요"라는 말이 여러 번 반복돼요. 설명하지 않아도 서로의 감각을 알아채는 순간들이에요. 화가는 이유 없이 할 수 있는 일이 좋다고, 자신이 살면서 느끼는 걸 매일 확인하고 또 확인하며 지낸다고 말해요. 정직한 말이 오갈 때 대화가 비로소 깊어진다는 걸 보여주는 장면이에요.